영화가 전체적으로 음울하다. 날씨도 온통 흐리고,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무거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무언가 조용히 흘러가다가 일이 터질 듯하면 한동안 나오지 않던 무거운 음악이 다시 흐른다. 흐린 날에 보기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대필작가의 이야기이다. 대필작가는 일하느라 글을 쓸 시간이 없고 , 그렇다고 막상 글을 쓰자니 자신에 대해 뭐라고 쓸 만할 글재주는 없는, 정치인들을 대신하는 사람이다. 극중 등장인물의 대사처럼, '결혼식장의 첩과 같은 존재'이다. 그 대필작가가 둘이 나오는데, 한 사람은 이름은 있으나 그 실제 인물은 등장하지 않고, 다른 한 사람(그)은 늘 화면에 등장하지만 반대로 이름이 없다. 영화를 본지 한참이 지났을 때, 시작 부분에 나오는 빈 차가 혹시 첫 번째 대필작가의 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일자리를 권유하는 친구와 주변인들은 전부 내 이름은 무엇이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오~ 라고 아주 친절하게 자기소개를 해 준다. 그러나 그를 면접(?)하는 동안 그에게는 계속 당신이라고 부른다. 뭔가 면접 같지 않았던 면접 직후에,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지만 그가 취직하기로 한 이유는 어마어마한 보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취직 이후에도 알 수 없는 일들을 겪게 된다. 그리고 취직되고 난 후에, 그에게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는 랭 수상은 자꾸 그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끝까지 '친구'라고만 부른다. 랭 뿐이 아니라 랭 주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에겐 당신이라고 부른다. 반면 전임자(마이크 맥카라)에 대해서는 꼬박꼬박 '마이크는~' 혹은 '맥카라였다면 이랬을 텐데~' 이런 식으로 꼬박꼬박 이름을 부르고 아닌 척 은근슬쩍 비교를 해 댄다. '네가 마이크를 따라올 수 있겠니?' 하는 식이다. 마이크는 이미 랭의 회고록 초판은 완성해 놓고 죽었다. 이상하다, 왜 거의 다 된 마당에 죽은(혹은 누군가 죽여 버린) 것일까? 의문을 뒤로 하고 회고록을 읽어보지만, 내용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어딘가 이상하다.
극중에서 그는 이름도 없는 존재이고, 가족도 없는 존재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슬퍼해줄 사람 하나 없고, 기억해 줄 사람 하나 없는 그런 사람이다. 영화를 보는 중간에 어쩌면 면접한 사람들이 이런 점을 전부 계산하여 접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역시 극중에서 점점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같이 일하는 랭이, 혹은 다른 사람이 던지는 당신은 누구냐는 물음에 당신의 유령이요(I'm your ghost) , 혹은 그의 대필작가입니다(His ghostwriter) , 이렇게만 대답을 하고본명을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랭의 정적인 라이카트에게 몰래 전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라이카트는 그에게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는 보안상의 이유로, 영국 수상의 회고록을 미국에서 작성해야만 한다. 그것도 미국 본토에서 고립된 섬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섬에 있는 집은 창문이 집의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어 집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모두 고개를 돌리면 서로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있다. 무언가 딴 짓을 하지 못하게 일부러 집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치인이 쓰는 집인데, 왜 이렇게 개방적으로 만들어 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극중에서 라이카트뿐 아니라 반대자들의 시위와 공격에 맞서서 일일이 전략을 세우고 대응하여야 하는 랭이다. 그런데 자신이 지내는 곳은 개방된 곳이다.
랭과 라이카트, 에멧 등을 포함한 인물들의 세계는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나오기 힘든 세계이고, 빠져나오기 위해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곳이다.
라이카트는 그를 돕는 척하지만 그와 나눈 대화를 전부 녹음해 버리고- 결국 라이카트도 랭과 같은 인간이었다- 그가 그런 체스판 같은 세계에서 늦게나마 자신의 의지로 움직여 보지만 늦어도 한참 늦었다. 랭의 세계에서 이미 대필작가 한 명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어 버린 마당에 그라고 100퍼센트 안전하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전임작가 마이크가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라이카트와 연락을 취하게 되었는지, 속으로는 랭을 범죄자라고 욕하고 싫어하면서도 그 밑에서 계속 일할 수 있었는지, 마이크가 죽기 전날 왜 랭과 격렬한 말다툼을 벌였는지, 그리고 마이크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는 추측만 해 볼 뿐이다.
그러나 대필작가가 단지 마이크와 그 둘뿐이었을까? 극중에 확실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마이크 이전에도 몇 명은 더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 몇명을 각자 알아서 편하게 처리를 해 버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이크는 죽기 직전에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모든 단서를 어떻게든 남겨 놓았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만약에 그가 둔감해서(?) 발견하지 못했다면, 영화는 어느 쪽으로 흘러갔고 결말은 어떻게 나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