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소설은 늘 어렵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전처럼 집중해서 책을 읽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이 소설은 손에 잡으면, 다른 것을 다 놓고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도 예전처럼 꼼꼼히 읽지는 않은 것 같다.


 본운에도 '심연'이란 말이 나온다. 

 맨 뒤의 작가의 말에도 '심연'이 나오고, 
 작가 말로는......... 
자신이 미처 드러내지 않은 부분을 독자가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라고 쓴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다 알고 읽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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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기]-김연수, <7번 국도> 중에서

34페이지

7번국도에서 자전거 타기 1

   길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내 눈앞의 그 길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서로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모습을 나는 볼 수 있다. 그렇게 길은 어디로든 통해 있다. 그런 점에서 길은 세상의 어떤 의미에로든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거대한 도서관과 같다. 서로 참조하고 서로 연결되며 끝없이 넓은 세계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지난 가을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풍기는 냄새, 아스팔트에 자전거 바퀴가 끌리는 냄새, 멀리 산에서 유선형으로 불어 내려오는 바람 냄새, 바다였던 대를 아직 기억하는 구름의 냄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곳을 바라보는 내 시선의 냄새들이 서로 뒤섞이고 갈라지고 함께하고 멀어지는 그 길 위에서 나는 스물 몇 해를 보내었다. 별들은 내가 서 있는 길의 서편에서 떠올라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사라졌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나면 다시 나는 낯선 곳에서 잠이 깨었다. 나는 길 위에서 뭔가를 배우고자 했었다. 길은 마치 펼쳐진 책의 페이지처럼 내 시선 앞에 펼쳐져 있었고 그 길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곳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한때 나는 그 길 위에서 이 세계가 아닌 다른 곳을 염원했었고, 그 형벌로 떨어지는 낙석들처럼 다시 길 위로 내팽개쳐졌다. 그렇게 세상에 온 나는 떨어진 밤송이마냥 낯선 길 위에 떨어져 있었다. 이곳은 어디일까? 노래라도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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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퀴즈쇼' 중에서

언젠가 한결이는 이런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계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역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 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거지?"

"잘못한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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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에서

당신이 지금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내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내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 언제 당신이 내 전체를 보게 될까 초조해하며 당신의 사랑에 익숙해져가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자의 생각이다. -6장. 마르크스주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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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려웠던..책. 한..세번만에 다 읽었나 싶다.
 
사랑에 대해 참 ..철학적으로 풀어놓았다 싶었던 책이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나' 와 '클로이'가 만날 확률을 계산하는 것에서부터..
웬 수학이람.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사귀면서 벌어지는 일들. 유치하다 못해 웃음 나오는 장면도 있었지만.

좀전에 다른 블로거가 쓴 글을 봤는데, 그 사람은 전문적으로 글쓰는 사람이라.

다르긴 확실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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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지 인용 수준이 아닌. 서평.
언젠간 나도 멋지게 쓸 수 있겠지.
조금만.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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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아 본 문장들-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중.

1. 그 순간 정민이 왜 그 이야기를 떠올렸고, 또 내게 들려주려고 마음먹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이야기는 씨앗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 뿌려졌다. 그 씨앗이 과연 어떻게 싹을 틔울지 당시의 나로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다 들은 후 나의 결론은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으리라는 것이었다. 사랑은 입술이고 라디오고 거대한 책이므로.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말을 건네므로. 그리고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라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아름답게, 이토록 아름답게 연결되므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사랑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을, 오직 존재하는 것은 서로 닿는 입술의, 그 손길의, 살갗의, 그 몸의 움직임뿐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더라면.



2. "자기 자신이 되어라"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내가 왜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지, 내게 누구에게 나의 인생을 맡기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이제 더이상 서울의 변두리를 걸어다니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또 현대사를 온몸으로 뚫고 지나온 다른 어른들이 그랬듯이, 한 시대의 우울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면, 그래야 내가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 모든 것을 내 등에 떠메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3.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그 순간 우리가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인생은 신비롭다. 그런 탓에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다른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무주에서 정민과 나란히 누워 바라본 밤하늘처럼 인생은 광활하고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무한한 삶.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일생, 즉 하나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해 여름 헬무트 베르크에게 들은 얘기 중에 이런 게 있다. 누군가 인도의 시인이었던 카비르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냐? 카비르. 신분이 뭐냐? 카비르. 직업이 뭐냐? 카비르. 나는 이 세 번의 카비르라는 대답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나 역시 몇 번을 스스로 물어도 나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해도 결국 나는 나였다. 그게 바로 내가 가진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4. 1980년대식 사랑. 그건 바로 대학교수인 상희가 이길용에 대해 품었던 감정 같은 것이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우울증, 강한 상대에게 품게 되는 열등감, 선한 사람이 마땅히 가지는 죄책감 등이 압도적인 폭력의 시기를 만나게 되면 때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나로서는 어디서 어디까지를 일컬어 사랑이라고 말해야 할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지만, 1980년대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감정들, 예를 들어 증오심이나 복수심, 혹은 공명심 등을 사랑으로 오인한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므로 이 아무런 의지도 지니지 못하는, 폭력적 시대의 도구에 불과한 인간을 향해 우리가 지니는 연민의 감정은 절대로 사랑이랄 수 없었다. 그건 증오심과 복수심에 딸려나오는 여분의 감정일 뿐이었다. 아무리 베르크 씨가 증오는 하나이고 사랑은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이 사람만은 달랐다.




5.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될 거예요. 우리가 누구였는지, 그때 왜 그랬는지. 결국 우리는 알게 될 겁니다. 자, 이제 우리는 가야 하니까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중략) 잘 가, 안녕. 나는 손을 들어 흔들면서 또 한번 중얼거렸다. 안녕이라고.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1991년 10월 어느 날 해질 무렵, 나는 한때 내가 살았던 어떤 뜨거운 시절에게 작별인사를 던진 것이라고.



6. "해진 티셔츠, 낡은 잡지, 손때 묻은 만년필, 칠이 벗겨진 담배 케이스, 군데군데 사진이 뜯긴 흔적이 남은 사진첩, 이제는 누구도 꽃을 꽂지 않는 꽃병. 우리 인생의 이야기는 그런 사물들 속에 깃들지. 우리가 한번 손으로 만질 때마다 사물들은 예전과 다른 것으로 바뀌지. 우리가 없어져도 그 사물들은 남는거야. 사라진 우리를 대신해서. 네가 방금 들은 피아노 선율은 그 동안 안나를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 됐어. 그 선율이 무슨 의미인지 당시에는 몰라. 그건 결국 늦게 배달되는 편지와 같은 거지. 산 뒤에 표에 적힌 출발시간을 보고 나서야 그 기차가 이미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기차표처럼. 안나가 보내는 편지는 그런 뜻이었어.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7. 어둠 속에 머물다가 단 한번뿐이었다고 하더라도 빛에 노출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평생 그 빛을 잃지 못하리라. 그런 순간에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됐으므로, 그 기억만으로 그들은 빛을 향한, 평생에 걸친 여행을 시작한다. 과거는 끊임없이 다시 찾아오면서 그들을 습격하고 복수하지만, 그리하여 때로 그들은 사기꾼이나 협잡꾼으로 죽어가지만 그들이 죽어가는 세계는 전과는 다른 세계다. 우리가 빠른 걸음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 침대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눈 뒤 식어가는 몸으로 누웠을 때, 눈을 감고 먼저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몇 개의 문장으로 자신의 일생을 요약한 글을 모두 다 썼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는 몇 번씩 그 모습을 바꾸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세계가 탄생했다. 실망한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자!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계가 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세계가 있다. 이 세계는 그렇게 여러 겹의 세계이며, 동시에 그 모든 세계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믿자! 설사 그 일이 온기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사기꾼이자 협잡꾼으로 우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계가 바로 우리에게 남은 열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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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arvatus.egloos.com/3406801
 
오랜만에 들러본 김연수씨 블로그. 그 '사진'도 어떤 건지 알게 되었고,
사운드 트랙이 있었다니 ::(몰랐다) 기간이 지나서 들을 수 없다능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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