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 무중력증후군

무중력 증후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윤고은 (한겨레출판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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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 신선함. 재기발랄함. 어떤 주제를 너무 가볍게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다루지도 않은 것

#1. 주인공 이름을 보고 크게 웃을 뻔했다. 하고많은 이름중에 ‘노시보’ 라니.
어쨌든. 시보는 강남의 모 부동산 회사 과장이고, 그의 일과는 출근해서, 전화번호부를 뒤져서,
전화번호부 상에 등록된 고객에게 땅을 팔아야 하는 것이다.
그는 ‘25세 노시보, 땅 팔다 죽다’ 라는 재미없는 묘지명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또 안 아픈 데가 없어서 한의원, 치과, 양의원 등 골고루 드나들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무어라고 정확하게 진단을 내려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퇴근 시간, 혹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수시로 건물 안의 병원을 출입한다.(참. 이 건물 안에 모든 것이 있어서 사람들은 밖에 나갈 필요가 없다)

아마도, 현대인의 스트레스성 질환 -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원인을 짚어 말할 수는 없었다.
혹시 난 그가 진료 중독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봤다.


#2. 그런 시보를 회사에 늘 지각하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뉴스’ 였다.
시보는 TV, 컴퓨터에도 모자라서 휴대폰으로까지 뉴스를 받아보는 뉴스 중독자였다.
어느 날 ‘두 번째 달’ 이 떴다는 보도가 있었고, 그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하나둘씩 변해 버렸다.

신체 상의 변화로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한편으론 ‘중력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름하여 ‘무중력자들의 모임’ 이 생겼고, 무중력자들의 집회가 열렸고, 무중력자라고 ‘커밍아웃’하고,
달로 여행을 가겠다고 고층 건물 옥상에서 점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현재 시국관련 집회가 많이 열리고 있는데.. 소설에서도 '집회' 하니까.
현실과 소설 내용이 크로스가 되어 내 눈앞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한쪽은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반성, 성찰을 다룬 '집회',
다른 한쪽은 소설 속의, 무중력자들의 모임이라는,
왜 달로 가야 하는지 역설하는.조금은 색다르고 특이한 집회.)


이런 시류에 맞추어, 시보네 회사에서는 모든 것을 ‘달’에 맞추어서,
달의 지가는 지구의 1/6 이라고 고객들에게 홍보 전화를 돌렸다.

시보네 가족 역시 이러한 변화 앞에서 예전과 다르게 변해 버렸다. 그리고 시보의 절친인 구보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태원의 구보씨가 여기서도 등장하는구나,
몰랐는데, 이 책을 보니까 1930년대의 구보씨는 현대소설에 이르기까지 네 번 등장했다고 한다)

또, 시보는 헤어진 연인 미아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나마 떨칠 기회를 얻었지만, 그 결과는 씁쓸했다.
그를 이용한 기자, ‘퓰리처’(본명이 있지만 시보는 그녀를 퓰리처라고 불렀다)는, 능수능란함 그 자체였다.

#3. 곧 이어 세 번째 달, 네 번째 달이 뜨고, 이제 달은 그저 그런 뉴스 거리가 되어 버렸다.
달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무렵, 시보는 자신이야말로 정말 ‘무중력 증후군’ 환자임을 알게 되었는데,
그가 가는 병원마다 , 이 위대한(?) 원조를 몰라 보고, 진단도 대강대강 내려 버렸다.


     (289-290페이지 중.
    긴 봄, 정말 달이 늘어났던 것일까. 우리의 상상력이 늘어났던 것일까. 어디선가 또 하나의 달이 떠오른 것이 아닐까. 양치기의 거짓말에 지쳐 진짜 늑대는 보지 못한 사람들처럼. 어딘가 진짜 달이 떠오른 것은 아닐까. 진짜 두 번째 달 말이다. 어쨌거나 그 모든 것들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의 거짓말이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은 것처럼 어쩌면 달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범죄를 계획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들킬 때까지 계속할 거짓말을.



#4. 실제로 지구를 휩쓸었던, SARS, 조류독감, 스페인 독감,  그리고 지금 유행하는 신종 플루, 수족구병 등등.
 이런 것처럼.  위의 ‘무중력 증후군’도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아닌 일부의 사람들. 에게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위의 질병들은 전 인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무중력 증후군은 일부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을지 몰라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것, 호기심의 대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자기 몸에 변화가 생기고, 혹은 무중력자라고 커밍 아웃하고, 직장에 사표를 던지는 사람들. 달 구경만 하고 오겠다는 사람들. 며칠씩 실종된 사람들. 그리고, 달로 가겠다고 몸을 던지는 무모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행정부는 어쩔 줄을 몰라하였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 나오는  백색 실명, 백색 공포처럼 실체가 없는 그 어떤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언가 실제로 존재하고 휩쓸고 지나가지만, 정작 그 바람을 맞지 않은 사람들. 다행히도,  눈이 멀어버리는 것을 피한. 사람이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 전 세계를 휩쓰는 병들, 분명히 실체는 있다.  뉴스에서 전 세계적으로 몇 만 명이 감염되었고, 혹은 어떠한 병으로 몇 만이 숨졌고, 하는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내 가까운 주변에는 그런 일이 없기에, 과연? 하는 생각이 몇 번씩 들고,  그러면서도,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은 들고. 그런 것이다.
 설 속에서는, 녹색 글상자에 인용한 말처럼.
 '달이 늘어났는지, 사람들의 상상력이 늘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지금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내가 겪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상상력이 늘어나서 빚은 결과는 결코 아니기에.

현실을 제대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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