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세시, 바람이 부나요?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다니엘 글라타우어 (문학동네, 2008년)
상세보기


#1. 읽으면서 며칠 전에 길가에서 들은 터보의 'cyber lover' 가 생각났다.

  속상했던 일이 생겨도/마음이 서글퍼질 때도/너와의 얘기속에 어느샌가 사라져/ 왜 내 마음이 설렐까/
  아직 한번도 만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게 이런느낌 생길수가 있을까/...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이게 무슨 소리야 했는데,
지금 들으니 어쩌면 이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노래와 소설은 차원이 다르지만)

#2.잘못 걸려온 전화, 잘못 들어온 문자,
혹은 잘못 들어온 이메일. 당신은 이럴 때 어떻게 하는가?
그냥 무시하지 않나? 나 같아도 신경 쓰지 않겠다.

 그 여자, 에미 로트너,
직업상 홈페이지 관리를 하고 있었다.
잘못 보낸 메일 한 통 때문에 레오 라이케를 알게 되었다. 

그 남자, 레오 라이케.
대학교 언어심리학 조교수이자 커뮤니케이션 카운슬러.
 이메일이 사람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 중이었다.


#3. 특이하게도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메일 내용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에미의 완벽한 가정에 과연 무엇이 부족한 것인지 생각해 봤는데, 결국 이거였구나.
미아나 소냐나 베른하르트나 마를레네나.
결국은 레오와 에미의 관계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한 소모품(?)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계는 철저히 레오와 에미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였다.
그들 중심으로 돌아갈수록 바깥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서로에게 집착하게 되는. 그런 세계.

스포일지는 모르지만. 에미와 레오가 실제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 말대로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순간, 온라인에서 지속되는 관계는 끝이라는 것을.
하지만 절정으로 갈수록 그들은 서로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거부하면서도 한편으론 서로를 원한다.
제목 그대로 새벽 세시까지 마치 탁구공이 왔다갔다 하듯, 끝없이 말을 주고받는다.
바람이 부나요 ? 라고 까지 물어가면서.

우리는 환상 속의 가상 인물을 만들어내 서로에 대한 몽타주를 작성하고 있어요.
질문을 하지만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게 그 질문들의 매력이죠. 그래요,
우린 서로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대답하는 걸 피하면서
상대방의 호기심을 자꾸 자극하고 계속 부채질해대고 있어요.
우린 행간을 읽으려 애쓰죠. 상대방을 정확하게 평가하려고 안간힘을 써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본질적인 면만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조심 또 조심해요.
‘본질적인’ 것이라는 게 뭘까요? 우린 자기 생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어요.
자신의 일상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 자기에게 중요한 무언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지요. (레오)


아. 이 불륜 커플. 뭐냐. 그런 그들의 이야기는 독자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가 나중에는 조금 지루하기까지 느껴 졌던 건. 왜일까?

매 순간 순간, 손과 머리를 이용해서 빚어내는 언어들의 조합에
매료되었는데도 . 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레오. 당신은 정석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자극히 목표 지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그게 저를 점점 긴장하게 만들어요.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알고 싶어하지 않죠. 당신은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저에게 ‘미칠 듯한 관심’을 나타내기도 하고 거의 병적인 무관심을 드러내기도 해요.
그리고 그게 저를 번갈아가며 화나게 하기도 하고 유쾌하게 만들기도 해요.
지금은 솔직히 말해 유쾌한 쪽이죠. (에미)

에미, 우리가 이메일을 사흘이나 쉬었군요.
슬슬 다시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은데요.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당신 생각을 많이 해요.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그리고 그사이의 시간과 그 바로 앞, 바로 뒤 시간에도.
다정한 인사를 보냅니다. 레오


#4, 결말. 반전. 그리고 끝.
조금은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태까지 이들이 나누었던 언어는 레오 말대로 자판을 훅 불고, 컴퓨터 전원을 끄면 사라지는,
그런 것이었나.

누군가 마음이 통하는 상대를 찾았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 마음이 통하는 상대를 단순히 찾은 것을 넘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글쎄. 아직 잘 모르겠다.


'독서도 편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4) 2009.06.23
윤고은, 무중력증후군  (4) 2009.06.18
'7번 국도' 를 읽고 나서,  (0) 2009.06.17
르 클레지오. '황금물고기'  (0) 2009.05.04
정장을 입은 사냥꾼  (0) 2009.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