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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스트, 이방인, 표리> 2020.08.21
  2.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07.09.30) 2 2009.02.25

<페스트, 이방인, 표리>

 

1. 페스트

 

  우연한 기회에 몇 달 전 『페스트』를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COVID-19와도 연관이 많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 책을 빌려갔고, 반납일이 지나도록 연체 중이었다. 어렵게 구한 책은 모 출판사에서 논술 수업용으로 내놓은 요약집이었다. 그 요약집은 굉장히 얇았지만 나름 생각할 내용이 있었으며 카뮈 연보도 나와 있었다.

내용은 페스트가 퍼지는 과정, 페스트의 확산을 막으려고 노력한 사람들 이야기였다.

참석자 중 한 명이  『페스트』에 『이방인』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와서 자신이 어떤 책을 읽는지 헷갈렸다며, 기회되면 『이방인』도 읽어보시라고 추천했다. 『페스트』보다 내용도 짧다고 했다.

 

2. 이방인

 


“그 때 한 밤 끝의 싸이렌이 울렸다. 그것은 이제 나에게 영원히 관계 없는 세계로의 출발을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만년에 왜 어머니가 <약혼자>를 가졌었는지 왜 생애를 다시 꾸며 보는 놀음을 하였는지 나는 알 수 있는 듯하였다. 그 곳, 생명들이 꺼져가는 그 양로원 근처에서도, 저녁은 서글픈 휴식 시간 같았었다. ”


결말로 갈수록 뫼르소와 신부(교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종교 쪽으로 이끄려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싸움. 그 싸움이 절정에 이른 후, 신부가 나가고 나서, 혼자 남겨진 뫼르소가 싸이렌 소리를 듣고 생각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사이렌 소리는 정말 사형집행을 알리는 소리였는지 환청이었는지.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가 온 것이다. ”


 다시 읽어봐도 놀라운 첫 문장이다.
처음 읽을 때도 무미건조해서 놀라웠다. 첫 번째 문장에 비하면 마지막 부분은 많이 나아진 건가. 아니면 아직도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뫼르소인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졌’다 는 표현은 적절한가. 뫼르소가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건가. 아니면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건가. 재판장에서 본 어느 젊은 기자처럼?

뫼르소는 좀 이상한 사람이다. 첫 문장부터 벌써 이상했다. ‘주인공이 감정이 없나.’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주인공이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쏘아죽였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러면 일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평범한 회사원 뫼르소가 사람을 죽이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회사에서 크게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장례식 전날부터 당일, 그 다음날의 태도도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람이 이렇게까지 건조해질 수가 있는지, 그런데 성격이나 태도가 변할 만한 무슨 큰 일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같은 건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레몽, 쌀라마노 영감 등)에게는 그나마 조금 다른 평가를 받는 것 같다. 하지만 레몽과 영감의 증언은 재판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레몽과 쌀라마노 영감이,  변호사와 검사가 하는 말의 절반만큼이라도 잘 했더라면, 청중이 귀를 기울였을까? 순환논증 같은 말만 하고 있으니.
판사가 뫼르소에게 묻는 내용들이 뫼르소에겐 불리하게 작용하는데도, 그렇게 대답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싶다. 정말 태양 때문이었다. 뫼르소다운 대답이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뫼르소는, 선고 이후 판사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는지 묻는데도 “없습니다” 고만 말한다. 이것 역시 어쩌면 뫼르소다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생각도 들었다.
감옥에서도 하루 24시간 중 16시간을 넘게 자는 걸 보면.  역시 감옥 안에서도 무미건조한 삶인가. 그런데, 우리도 어쩌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걸 팽개치고 싶고 의욕도 없고 의미 없다고 느낄 때, 자고 일어나도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나? 잠만 계속 자고 싶고 그렇지 않나?

 어찌되었건 차라리 형을 몇 년 더 살고 출소하였으면 했는데. 작가는 그런 희망도 주지 않았다.

인생은 참 무엇인가? 뫼르소가 같은 건물에 사는 레몽을 알지 않았더라면, 알았더라도 더 친하지 않았더라면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기소되었어도 적극적으로 자기 변호를 했다면 ?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뫼르소는 천국으로 갔을까, 지옥으로 갔을까,

우리를 심판할 수 있는 존재는 무엇인가?

뫼르소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라면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3. 표리

카뮈는 『표리』 제목 안에 짧은 에세이 6편을 실었고, 그 에세이들을 통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미세하게 표현해 냈다.  22세의 나이에 저 정도까지 생각한 것이 대단하다.

하지만 각 편에서 이것이 경험담인지, 실제 여행기인지 실제 가족에 기초한 얘기인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꾸며낸 것인지 알 수가 없었고, 그 문장 뒤에 숨어있는 의미를 알기 어려웠다.

다만 다음 문장을 보면서 『표리』가, 『이방인』 보다는 조금 내용이 긍정적인 쪽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만.


다른 사람들은 책 페이지 속에 꽃 한 송이를 넣어서 사랑이 그들을 스쳐갔던 시절의 산보를 그 속에 간직한다. 나도 산보를 한다. 그러나 나를 어루만져 주는 것은 하나의 신이다. 인생은 짧고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은 죄악이다. 나는 활동적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활동적이라는 것도 자기 자신을 낭비하는 것이니만큼 역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중략)

 

큰 용기란 빛을 향하여서도 죽음을 향하여서도 눈을 뜨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 가슴을 찢는 듯한 삶의 사랑으로부터 이 은밀한 절망으로 인도하는 연계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사물들 속 깊숙이 웅크린 이로니에 귀를 기울이면 그것은 서서히 드러난다. 조그맣고 맑은 눈을 깜박이며 그 이로니는 '그래도 살아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많은 탐구에도 불구하고 나의 지식은 이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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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07.09.30)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공지영 (황금나침반, 2006년)
상세보기

다른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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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 코너에 이 책이 들어왔다고 했을 때, 왠지 끌려서 대출하고 싶었는데, 이미 늦었다.
누군가 대출 중이었다. 학기 중에 시간 날때마다 대출하려 했는데, 그때마다 늘 대출중이었고,
한번은 예약도서가 도착했다고 문자가 왔는데, 못 가는 바람에 계속 못 보게 된 것이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것도 못 봤다) 못지않게 0순위를 다투었던 작품 같다.


난 산문집은 잘 읽지 않는다. 굳이 읽었다면 노신 산문집 정도일까.
(그것도 다 못 본 것 같다)주로 소설을 많이 읽고, 수필이나 명상집은 한권 정도 봤다고 해야 하나,
 시집은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설 중에서도 추리소설류를 즐기는 편이다.


산문집을 읽어 보니 수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굳이 수필과 다른 점을 꼽으라면,
수필은 사실에 바탕을 두지만, 허구에 바탕을 두고 쓸 수도 있다고 배웠지만,
이 산문집은 실제 경험을 소재로 한 것이라 한다.


작가는 산문집 속에서 ‘J’ 라는 대상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문득 중학생 때 일기장에 M에게, 라고 시작되는 편지를 썼던 생각이 났다. 
하지만 나와 다른 점이,.. 나는 그냥 딘순사실들의 나열-뭐 하고 뭐 하고 뭐 했다-이라면,
 작가는 일상의 한 부분을 끄집어내서 더 크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글이 시작되기 전에 시 한 편씩 써놓고 시작되는 그녀의 이야기.
읽으면 읽을수록 흡입력 있는 글을. 처음 책 빌려온 날은 다른 책을 보느라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자기 전에 책 제목과 같은 ‘빗방울처럼…’편만 읽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은 맨 마지막 글이다. 
‘글을 마치며’ 편. 마지막 장에 싣기 좋은 글 같다. 



… 괜찮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어떻게든 살아 있으면 감정은 마치 절망처럼 우리를 속이던 시간들을 다시 걷어가고, 기어이 그러고야 만다고. 그러면 다시 눈부신 햇살이 비 lrl도 한다고, 그 후 다시 먹구름이 끼고, 소낙비 난데없이 쏟아지고 그러고는 결국 또 해 비친다고. 그러니 부디 소중한 생을, 이 우주를 다 준대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지금 이 시간을, 그 시간의 주인인 그대를 제발 죽이지는 말아달라고.


J. 비가 그치고 해가 나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 하늘에 먹구름 다시 끼겠지요. 그러나 J,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살아 있습니다.


하나 더 추가.

 



… 핸드폰은 끄고 예전에 우리가 들었던 좋은 음악을 골라 친구에게 음악 메일을 보내며 잔잔한 일상을 알리는 그런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날의 바람 결에 관해서라든가 내리는 비를 맞고 선 가을 나무에 관해서, 밤에 관해서 별에 관해서 혹은 언젠가 우리가 밤을 새워 이야기한 오래전의 희망 같은 것을 적어보내면, 그러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입니다.


뒤죽박죽된 CD장을 정리하면서 오래된 노래를 하나식 들어보는 날, 그게 누군가를 오래 기다리던 겨울날의 기억을 불러내거든 겨울날 그를 기다리며 마셨던 커피를 새로 끓여 마시고, 그 음악이 어떤 사람과 헤어진 후 나를 달래는 밤에 들었던 곡이라면 그대로 거실 바닥에 누워서 그날들의 슬픔을, 이제는 상처가 아물어서 언뜻 감미로워진 상처를 생각하면서 뒹굴거리고, 그런다면 행복할 수 있겠다고.


그러다가 인사 한 마디 못하고 헤어진 옛사랑이 생각나거든 책상에 앉아 마른 걸레로 윤이 나게 책상을 닦아내고 부치지 않아도 괜찮을 그런 편지를 쓴다면 좋겠습니다.


‘한가하고 심심하게, 달빛 아래서 술 마시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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