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에 해당되는 글 2건

  1. 다시 써 본 리뷰-사라예보의 첼리스트- 2009.03.02
  2.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4 2009.02.28

다시 써 본 리뷰-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좀 급하게 읽고..급하게 다른 리뷰 게시판에 올렸던 아래 글.
똑같은 책을 받은 아홉 명의 글을 봤다.
짧지만 각기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들의 글. 잘 읽었다.
그냥...다시 써 보고 싶어서. 책을 다시 읽어보았고. 그리고 글이 좀 길어졌다.
-------------------------------------------------------------------------------------



충돌 작전, 찰나의 순간이 있었다. 사물들이 원래의 모습을 간직했던 마지막 순간. 그리고 보이는 세계는 폭발했다.                        - ‘첼리스트’ 중


책 표지그림에서부터 절망과 슬픔을 느낄 수 있던 책.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먼저 읽었을 때보다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다시 읽어 보았다.


‘여러분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라는 레온 트로츠키의 한 마디로 시작하는 소설. 이 책은 ‘사라예보 점령’의 정확한 연대기를 따르지 않았다고 했다. 실존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와 실제 있었던 여성 저격수(이름은 모른다) 이야기를 들은 작가가. 허구로 만들어 낸 것이다.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무너진다면, 순식간에 앞집 이웃이 총을 든 악마로 변신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내가 그런 곳에서  제 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애로처럼 총을 들거나, 아니면 케난처럼 겁을 내면서도 물을 구하러 가거나, 혹은 드라간처럼 겁을 내면서도 총에 맞은 사람을 구하려 애쓴다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리스톱스키 부인처럼 모든 것이 끝나길 숨죽여 기다리거나 할 것이다. 스마일로비치처럼 포탄이 마구 떨어지는 도시 한가운데서 감히 음악을 연주할 생각은 못 할 것 같다.  전쟁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무참하게도 파괴해 놓았다.


   1992년 사라예보.  그 때 그곳에서 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사라예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소설에도 나오지만 ‘프린치프 다리’ 장면.  1차대전의 원인이 되었던 1914년 사라예보 사건뿐이었다. 1992년의 사건을 신문, 잡지, 티브이에서 나왔었다 해도  오래 전 일이라,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몇 년 전의 잡지 기사에서도 봤지만 발칸 반도는 항상 ‘발칵’ 뒤집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좀 잠잠한 듯 하지만. 또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일도 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첼리스트는 빵을 사러 왔다가 폭격을 받고 죽은 22인을 위하여 , 22일 동안 알비노니 아다지오를 연주한다. 그 기간 동안 반대편에서는 첼리스트를 죽이기 위해 저격수를 파견했고,  여성 저격수 애로는 그를 지켜야 했다. 사라예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였던 그가, 죽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첼로 연주밖에 없었고, 그는 22일간의 약속을 지키려 최선을 다 했다.

  그리고 애로(Arrow).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이름은 화살이란 뜻이다. 하지만 본명은 아니다. 대학 사격 팀 선수로 활동할 때만 해도, 그녀는 본명을 쓰고 있었지만, 전쟁이 그녀를 이렇게 바꿔 놓았다. 그녀는 총을 잡았다. ‘스스로’ 무기가 되어서. 나와 몇 살 차이 안 나는 그녀는. 전쟁이 없었더라면, 소설에 나온대로, 아마 결혼하거나, 대학원까지 가서 좋은 직장을 얻었거나, 멋진 아파트에서 살거나, 저녁이면 친구들과 극장에 가거나,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망가져 버렸다. 그리고..그녀는 첼리스트를 지켜야 한다.



 그 많은 날 가운데, 어떤 특정한 날이 당신을 선택한다. 오후 네시에. 인생이란 자잘하고 불가피한 결정들의 연속이기에, 당신은 그저 뭔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언덕 위의 누군가가 당신을 죽이려고 폭탄을 날려보낸다. 그들에겐 아마 수많은 날 가운데 하루, 그저 폭탄 한 개 더 날린 것뿐이었을 수도 있다. 전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2부. ‘애로’ 중


  드라간, 전 두려워요.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다 두려워요. 이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고, 그래서 이 전쟁이 그냥 하나의 전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삶으로 완전히 굳어질까봐 두려워요                                                   -2부, ‘ 드라간’ 중


-그를 죽인 건 그가 내게 총을 쐈었기 때문이에요. 나중에라도 쏠까봐 그를 믿을 수가 없었어요. 선택의여지가 없었어요.

-물론, 그래. 하지만 이 일은 첼리스트와 아무 상관이 없네. 자네가 사라여줘야 할 시간이 온 거야.                                                         -3부. ‘애로’ 중

           
이 부분에서 알 수 없는 슬픔이 느껴졌다.



‘평범한 인물들’ 첼리스트와 여성 저격수 애로, 드라간, 케난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한다. 첼리스트의 음악은 각자에게 잊혀진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메마른 그들의 가슴을 적셔 준다.


 첼리스트가 눈을 뜬다. 그녀가 그의 얼굴에서 보았던 슬픔은 사라지고 없다. 그녀는 그 슬픔이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한다(중략)첫 소절이 울렸지만 그녀에겐 들리지 않는다. 소리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댄다. 그녀는 이제 거기에 없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들어올려 빙빙 돌리며 웃고 있다.(중략) 그녀는 숨을 내쉬고, 방아쇠를 당긴다.

                                                                    -2부, ‘애로’ 중


 그는 첼리스트의 머리카락이 매끈하게 펴지고 그의 턱수염이 사라지는 걸 지켜본다. 더러운 턱시도가 깨끗해지고, 구두는 거울처럼 반짝반짝 윤이 난다. 케난은 첼리스트가 연주하는 곡을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왠지 무슨 곡인지는 알 것 같다.

                                                                    -3부, ‘케난’ 중


 애로는 항상 목표물은 자기가 스스로 정했지만, 어느 새 그녀는 살인부대 에딘 카라만 대령 부대에 강제 소속되고, 죄 없는 사람을 쏘라는 말에 그 곳을 박차고 나와 버린다.


-그렇다고 그가 우리를 죽여야 할 저들 중 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는 저들과 한패예요. 저들은 그의 아들들이고, 그는 저들의 아버지거나 할아버지거나 삼촌이예요. 저들은 우리의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과 삼촌들을 죽였어요.                                                              -3부,  ‘애로’ 중


 드라간 역시, 총을 맞을까봐 두려워했지만. 그는 점차 변했고, 자신의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


 길 건너편을 보니 카메라맨이 입을 떡 벌리고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 카메라가 손에 들려 있지만, 아직 어깨 위에 걸쳐져 있지는 않다. 그의 모습도, 모자 잃은 남자의 모습도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3부, ‘드라간’ 중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애로는 여태 자기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음악을 귀 뿐 아니라

온 몸과 마음으로 절실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애로는 떨리는 현들의 느린 진동이 자기안으로 밀려들어오게 했다. 슬픔이 목구멍에 들어찬 덩어리를 들여올렸고, 눈물을 삼켜야 했다.

                                                                   -4부, ‘애로’ 중



슬프도록 아름다운 음악.

알비노니 아다지오는 새벽에 들을 때와

햇살이 밝은 오전에 들을 때 그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 읽으면서 중간 중간에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참 많았지만. 이 정도로만 옮겨 둔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중략) 온몸을 감싸는 살아 있다는 행복감과, 언젠가 이 모든 게 다 끝나버릴 거라는 확신으로 인해 더욱 강렬해지는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애로야. 그들을 증오하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지. 당신이 알던 그 여자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어




* 영화로도 제작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영화도 보고 싶다.

'독서도 편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자폐인 이야기  (2) 2009.03.12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2) 2009.03.09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4) 2009.02.28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07.09.30)  (2) 2009.02.25
사도세자의 고백 (07.09.30)  (0) 2009.02.25
,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스티븐 갤러웨이 (문학동네, 2008년)
상세보기


까닭 없는 우울증, 공허함, 무언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오래 전부터 읽으려 했으나 못 읽었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읽다 보니 한번에 다 읽게 되었다.

 이 소설은 전쟁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전쟁이라는 것조차 감각적으로 그려낸 것 같다. 
죽은 22명을 위해,
22일 동안 연주하겠다고 약속한 첼리스트,
그리고 그를 지켜야 하는 여성 저격수.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 드라간, 케난. 등등

알비노니 아다지오는 22일 간 사람들의 메마른 마음을 다시 적셔 주었다.

하지만 22일째 되는 날, 첼리스트는 살고 저격수는 사라져야 한다.

읽으면서 영화 ‘피아니스트’ 에서, 폐허 속에 서 있는 피아니스트 스필만이 생각났다.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무너진다면, 순식간에 앞집 이웃이 총을 든 악마로 변신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 
내가 그런 곳에서 제 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애로처럼 총을 들거나, 아니면 케난처럼, 혹은 드라간처럼 겁을 내면서도 물을 구하러 가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리스톱스키 부인처럼 모든 것이 끝나길 숨죽여 기다리거나 할 것이다.
스마일로비치처럼 포탄이 마구 떨어지는 도시
가운데서 감히 음악을 연주할 생각은 못 할 것 같다.

읽으면서 우울증과 공허함은 어느 새 멀리 달아나 버린 것 같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음악.
알비노니 아다지오는 새벽에 들을 때와
 햇살이 밝은 오전에
들을 때 그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책 뒤편에 있는 설명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사라예보 내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

-충돌 작전, 찰나의 순간이 있었다. 사물들이 원래의 모습을 간직했던 마지막 순간. 그리고 보이는 세계는 폭발했다.


-비록 나중에 벌어질 모든 일을 알고 있다 해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순간을 늦출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 순간을 더욱 선명하게 떠올릴 수만 있다면, 그는 무엇이든 포기할 것이다


 

-온몸을 감싸는 살아 있다는 행복감과, 언젠가 이 모든 게 다 끝나버릴 거라는 확신으로 인해
더욱 강렬해지는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애로야. 그들을 증오하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지. 당신이 알던 그 여자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어.


 여러분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여러분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레온 트로츠키
----------------------------------------------------------------------------------------------------

,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