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씨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나서.

 
(본문 중에서)


  이제는 알겠다. 사랑은 여분의 것이다. 인생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찎Jrl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사는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데츠트보’라든가 니콜라예프스크 같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들 속에서, 열병에 걸린 듯 현기증을 느끼며 사랑한다. 한 번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했던 것들이, 우리를 환상 속으로 이끄는 그 모든 낯선 감각의 경험들이 사랑의 거의 전부다.


   사랑에 빠지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전에 없이 더 또렷해진다는 건 바로 그때 알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대체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아름다움도 그리운 단 하나의 얼굴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한 장의 편지로 인해서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움직이던 내 삶은 큰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1932년 9월 용정 - 중에서


   눈동자. 내 눈동자. 두 개의 검은 눈동자. 서로 연결돼 있으되 귀와 코와 입과는 전혀 다른 기관, 듣고 맡고 맛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단 하나의 감각.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건 믿는다는 것. 그러기에 귀와 코와 입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눈을 의심할 수는 없다는 것. 의심할 수 없기에 충분히 인간을 미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물론 내게도 그런 눈동자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캄캄했다.


   그 시절, 사랑은 다만 사랑이었을 뿐이며 희망은 희망 아닌 것들과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이제 모두 지나갔다. 사랑에는 의심과 증오가 스며들었으며, 희망은 가장 어두운 숲 속까지 들어가서야 간신히 찾을 수 있게 됐다.


-1933년 7월 어랑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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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씨의 최신작. ‘밤은 노래한다’

실제 사건(민생단 사건)을 가지고 쓰여진 소설.

민생단 사건이란 건 이 책을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히겠다고. 가벼운 소설을 읽겠다고 한 게

이걸 택해서...참. 내용이 무거우니.. 마음이 무겁다.


단순 사랑 이야기가 아닌..

그것도. 동포의 손에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꼭 민생단 사건 아니더라도 사례는 얼마든지 있지만.. 김원봉 평전의 오성륜이라든가, 이회영 가문의 변절자...라든가, 아니면 경성스캔들에서 억울하게 죽은 차송주나. )


김해연, 이정희, 안세훈, 박길룡, 최도식, 나카지마 타츠키..

아. 오늘은 이 사람들하고 시간을 같이 보냈구나.


어쩌다 보니 나도 이들과 함께 1933년, 34년, 간도, 어랑촌을 같이 돌아다니게 되었고.

소름끼치는 장면을 보았고, 혼란스럽고. 그랬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카지마의 말처럼.


“그렇다면 나도 사랑이라는 걸 한번 해보죠.”

그 말에 나카지마가 한쪽 눈을 치켜떴다가 다시 감았다.

“그건 네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거야.”


해연은 변해 버렸다.

정희가 과연 자기를 사랑랬는지 아닌지. 의심하다가.

정희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복수까지 결심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어쨌든 해연은.. 한참 변했다.


(마무리가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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